정의당은 2012년 ‘노동자, 농민, 일하는 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의당 10년의 실험과 도전은 오늘날 실패라는 평가를 마주하고 있다. 21대 총선, 20대 대선, 제8회 지방선거의 참패는 단순히 선거 전략의 미흡함 때문이 아니다. 지난 10년 간 정의당이 표방했던 가치와 비전, 노선의 실패이다.
정의당은 강령을 통해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지향으로 삼고, 정치개혁을 통해 ‘시민을 닮은 다당제 의회’를 구성하여, 정치에서 소외된 시민들을 대변하겠다는 노선과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례 없는 불평등과 기후위기 앞에서 복지국가는 대안이 되기에 역부족이었고, 정치개혁 의제로의 집중은 정의당마저 제 밥그릇 싸움에 골몰한다는 인상을 덧씌웠다.
거대양당 틈바구니에서 제3정당으로서 정의당이 존재해야하는 이유 또한 불투명했다. 조국사태-공수처-검수완박 국면 등 주요한 정치적 사건마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행보를 같이해왔으며, 사회운동-타 진보정당과는 거리두기로 일관했다. 정의당은 ‘대표 진보정당’이라기보다, ‘작은 민주당’에 불과했다.
지나친 원내정치 편향으로 지역 활동은 허약해졌고 기층 활동가들은 이탈했다. 이 과정에서 당권자는 급감했고, 당원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동력으로 삼아온 진보정당의 면모 또한 잃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의 실체는 차기 선거에서의 당선가능성이 저조하다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역사와 함께해 온 사회변혁의 꿈이 소멸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진보정당이 만들어갈 사회에서 민중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정책 몇 가지로 거대양당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수립이라는 과감한 전망을 내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민중들과 함께 꿈꾸고 실천하는 진보정당으로 다시금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와 지향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을 모아내야 한다. 20년 전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 만들어보자며 수많은 동지들이 의기투합했던 것처럼, 진보의 재구성을 향해 과감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정의당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의 틀을 넘어, 보다 자유롭게 상상하며 진보정치의 자장을 넓혀야 한다. 당명을 포함해, 강령과 노선, 인적구성까지 광범위한 혁신을 통해 재창당으로 나가야 한다.
이에 다음과 같은 8대 과제 달성을 통해, 전면적인 재창당 추진을 제안한다.
1. 자본주의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성을 중심으로 강령을 개정해야 한다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내세운 현 강령은 유통기한이 다했다. 전 지구적인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 자본 중심이 아닌 사회 중심, 인간 중심을 넘어 지구적 생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스템을 수립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더 많은 복지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자는 주장이 필요하다.
2. 의회중심주의를 청산하고, 제2의 거대한 소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힘은 의석수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민중들의 숫자에 있다. 진보정당의 역할은 ‘시민을 닯은 의회’를 만들어 인구 구성비를 기준으로 정치적 요구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와 서민,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 등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의회 내에 압력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거대양당 체제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3. 낡은 6공화국 체제를 넘어 제7공화국 운동을 펼쳐 나가자
6공화국 수립 과정에서 배제된 민중들의 결집이 진보정당 역사의 토대였음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김영삼-김대중-노태우의 정치담합과 맞섰던,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민중후보 운동에서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를 찾는다. 6공화국이 거대양당 기득권 체제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제7공화국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제7공화국 운동은 형식적인 개헌 주장이 아니다. 사회적 평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이다.
4. 노동과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양 날개를 펼쳐야 한다
노동과 페미니즘 두 지향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지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노동과 페미니즘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닐뿐더러,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한국사회의 핵심적 사회모순과 맞닿아 있다. 조직노동을 비롯한 전통적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동시에 플랫폼 노동 등 새롭게 등장한 불안정 노동자들을 규합하기 위한 기획이 제안되어야 한다. 또한 구호와 선언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넘어 구체적인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5. 한반도 평화와 국제연대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의당의 지향은 한국사회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 지구적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역시 진보정당의 책무이다. 미중 신냉전 시대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각지에서 민중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인권을 위협하고 있는 정세에서, 정의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천과 국제적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6. 진보의 재구성에 나서자
현재의 위기는 정의당만의 위기가 아니라, 진보정치 모두의 위기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운동 세력-타 진보정당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한다. 분열과 반목의 진보정당 시대를 종결하고 진보정치 2막을 시작하기 위해, 각자의 이해관계를 내려놓아야 한다. 진보의 재구성을 통한 진보정치 성장과 도약을 도모하자.
7. 지역과 현장 중심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의도 중심 원내정치를 탈피해야 한다. 지역과 현장에서 정의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지역-현장 활동가 발굴과 성장에 주력하고, 각 지역위원회의 실질적인 활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전당적인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
8. 독자 진보정당 노선에 대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동안 정의당은 민주대연합이라는 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친민주당 경향의 정치적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독자적 진보정당 노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구체적 실행을 위한 당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2022년 9월 16일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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