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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윤석열 정부의 파행적 대일외교, '매국' 프레임을 넘어 동아시아 반전평화연대로 맞서자

by 전환_ 2023. 4. 12.

윤석열 정부의 파행적 대일외교, '매국' 프레임을 넘어 동아시아 반전평화연대로 맞서자

 

윤석열 정부가 내건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에 대한 정부해법은 전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분노를 초래하고 있다.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국내 기업이 출연한 재단을 통해 강제동원 노동자들에게 배상한다는 안은 피해자의 의사는 물론이거니와 야당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며 일방적으로 이러한 정부해법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한일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많은 시민이 피해자들의 인권에 공감하며 정부의 외교에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농산물 수입 문제, 독도 주권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관철하지 못하며 ‘굴욕’ 외교 논란을 자처하였다. 정부에서 자화자찬하고 있는 경제협력의 강화 또한 한국의 경제적 ‘국익’에 미루어 볼 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일방적이고 조급한 외교로 인해 현안들은 신중하게 논의되지 못했고 한일 간 협상의 역학도 일방적으로 기울어지고 만 상황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한 외교에 대해 사회적 분노가 결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분노가 ‘반일’ 정서의 고양이나 ‘매국’ 외교 프레임에 갇히게 되며 실질적 대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를 ‘한반도 출신 노무자 문제’로 규정하며 식민주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 협상에서 ‘국익’을 관철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아의 복잡한 정세에서 조급한 한미일 동맹 강화로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 또한 정당하다. 그러나 일본을 민족적으로 적대시하거나 정부 외교의 의도를 ‘매국’으로 규정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강제동원 배상 해결책과 한미일군사동맹 강화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책임 있게 토론하기 어렵다.

 

정의당은 지난 4월 3일 ‘강제동원 정부해법 TF’를 구성하여 정부 해법의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 진보정당에게 필요한 역할은 강제동원 배상에 대한 대안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과 동시에 그 배경이 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문제를 직시하고 동아시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토론을 촉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제동원 배상 해법을 사법부와 행정부 간의 대립 구도만으로 설정하거나,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국정조사 실시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는 여야의 정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민생에 대한 책임 있는 정치가 실종되어가는 조건에서 이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조성한 소용돌이에 불필요하게 휩쓸리는 결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진보정당 정의당은 우선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강제동원 배상 관련 가해 기업의 사죄와 보상금 출연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제안해야 한다. 1958년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받은 청구권자금이 한국 대기업 성장의 발판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한국의 정부 및 자본의 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식민주의와 전쟁에 대한, 그 과정에서 짓밟힌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 정부와 자본에 있다. 그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동아시아 평화 외교는 불가능하다.

 

아울러 한일 외교의 배경인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가 동아시아에서 다시금 전쟁 위기를 고조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이를 견제, 완화하기 위한 대안을 고심해야 한다. 한일 간의 논의에 대해 미국이 앞장서 환영하고 나선 현실은 현재 윤석열 정부 외교의 배후에 미국의 강한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1958년 한일수교 당시 미국이 대중·대소 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한미일 동맹을 밀어붙였고, 정치경제적 성과에 조급하였던 박정희 정권이 이에 부응함으로써 한일 간 역사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잘못 꿴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대만해협에서 고조되는 긴장과 이를 명분으로 미국의 지원 하에 이루어지는 일본의 재무장 시도, 북한의 핵무장 강화와 남북관계 악화는 평화를 위한 중립외교의 고민이 더욱 깊어져야 할 때임을 시사한다. 당장의 안보를 위하여 조급하게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선택하는 외교는 남북관계는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불안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서 국가 간 외교정책을 제안할 뿐 아니라 전쟁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동아시아 국제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남북과 미중 모두에서 군비팽창이 극심해지고 일본의 재무장이 시도되고 있는 지금, 전쟁위기의 고조는 통치 엘리트의 정치적 이익과 군수자본의 이윤만을 늘릴 뿐 시민들의 일상과 민생을 위협한다. 전쟁무기의 생산과 대규모 군사훈련의 반복이 당장 눈앞에 닥쳐오는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미일 및 동아시아의 제 진보정당, 그리고 평화를 촉진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운동 간의 교류와 소통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매국’ 외교나 ‘반일’ 정서 프레임에 매몰되기보다, 일본의 시민들을 포괄하는 국제 연대를 주도하며 반전평화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 독자적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다.


2023년 4월 12일 (수)
전환